스토리 [90년대 드라마로 보는 식생활의 변화] (3)전원일기-서양식푸드투데이 조성윤 기자 [email protected] 등록 2021.04.23 17:25:16
[푸드투데이=조성윤 기자] <편집자주>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90년대 드라마가 다양한 채널에서 부활하고 있다.
그 중 전원일기는 마니아층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 방송된 전원일기는 농촌사회의 이면과 가족애를 섬세하게 그린 작품으로 각광받았다.
양촌리라는 동네에서 손꼽히는 대가족으로 꼽히는 김 회장 가족을 중심으로 이웃간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이 드라마는 특히 음식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다.
23년이라는 세월을 담은 이 드라마를 보면 우리의 식생활도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다.
Episode 양촌리 부인회장은 수확의 하이라이트인 쌀 수매를 앞두고 있다.
부녀회장은 쌀을 사러 가는 남편에게 매입한 금액을 술값으로 쓰지 말고 모두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다가 냄비 세트를 자랑하는 섭이가 엄마에게 그 돈으로 자녀교육보험이라도 들어 두라고 핀잔을 줘 기분이 상한다.
하교한 아들 정기는 내일 학교에서 전시회에서 특선을 땄다며 방문을 요청하고 별다른 옷차림이 없던 부녀회장은 섭이가 어머니의 숄을 빌리려 하는데 냄비세트에서 망신을 준 그녀는 남편과 동네 양식집에서 먹은 돈가스 소스가 딸려 있어 빌려주지 않는다고 고집을 부린다.
집에 와서 입고 갈 옷도 없고, 자신도 돈가스를 먹고 싶다고 한탄하는 부인 회장의 남편은 쌀을 사들인 돈으로 동네 양식집에서 외식하자고 제안한다.
서투른 칼질을 하며 허겁지겁 마시는 아내에게 맥주를 한 잔 권하며 맛있게 마시는 것만 봐도 마른 논에 물들어 가는 것 같다며 가족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경양식은 1980~1990년대 방영 또는 재현한 드라마 등에서는 특별한 날에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가거나 남녀 데이트 장면에서 자주 등장한다.
당시에는 그만큼 특별한 메뉴였다.
주로 오므라이스와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등이 주를 이뤘지만 돈가스 전문점이 생기기 전까지 돈가스는 인기 있는 간식 메뉴였다.
돈까스의 어원은 일본어에 있기 때문에 영어 표현을 하면 포크 커틀릿이다.
분식점에서 판매하는 돈가스는 지금처럼 분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둥글고 납작한 돈가스와 적은 양의 마카로니, 감자와 케첩, 마요네즈가 드레싱인 양배추 샐러드가 곁들여졌다.
특히 돈가스 햄버거 등 고기 메뉴를 다지지 않은 덩어리 소스를 얹은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양식당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으면서 양식을 먹을 때 “칼질을 하러 간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1925년 경성역사 준공과 함께 역사 내 식당으로 개점한 ‘그릴’이 국내 최초의 경양식당으로 추정된다.
그릴은 해방 후 대한민국 철도청이 운영하면서 간식이 고급 외식 메뉴로 인기를 끌었던 7.80년대에는 서울역뿐 아니라 다른 역에도 분점을 내 플라자호텔에 경영권을 넘겼다고 한다.
하지만 패밀리레스토랑 등 다양한 외식 메뉴가 생기면서 외환위기와 맞물려 모두 문을 닫고 서울역 그릴만 남겨두게 됐다.
그러나 서울역 그릴은 명동의 수많은 서양식 레스토랑을 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1983년 ‘명동돈가스’는 처음으로 정통 일본식 돈가스를 선보였다.
이렇게 해서 돈가스 전문점이 생기면서 경양식과 돈가스는 분리되었다.
90년대 명동만큼 인기 있던 압구정로데오에서도 1984년 문을 연 ‘델리’가 돈까스와 카레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로 식사의 변화를 가져왔다.
잠실에서 손꼽히는 간편식 형태의 돈가스를 파는 전통 돈까스의 집도 1984년에 문을 열었다.
90년대 중후반 도산공원을 중심으로 일본식 돈가스 전문점이 유행하면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양식점은 촌티가 됐다.
진화한 일본식 돈가스는 일본식 나무젓가락을 사용하기 위해 미리 잘라놓고 나오고 국물 대신 된장국이 나오고 소스도 뿌려져 나오지 않는다.
두툼한 케첩과 마요네즈를 곁들인 양배추 대신 가늘게 채 썬 양배추에 락교와 초생강이 제공됐다.
하지만 이런 요리는 다 삭막하고 저런 요리가 세련됐다는 발상 자체가 유치한 생각이다.
오늘처럼 봄이 깊어가는 저녁이면 바삭하고 두툼한 일본식 돈가스에 시원한 생맥주가 떠오른다.
위안이 되고 싶은 날이나 친구가 보고 싶은 날이면 얇게 썰고 넓은 고기에 한국식 브라운 소스를 듬뿍 얹은 돈가스와 소주 한 잔이 그립다.
아내와 아이들이 돈가스를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른 논에 물이 들어선다는 심정으로 행복해 하던 가장의 마음이 모든 것을 가볍게 여기는 혼돈의 시대인 지금도 그대로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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